기억, 마주서다 6부 [단죄] 181016 방송
▣ 단죄하지 못한 역사, 그 뼈아픈 기억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민중들은 친일파 청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미국은 일본 치하에서 일을 하던 친일 조선인들을 공무원과 경찰, 군인으로 거의 대부분 등용했다. 한반도의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이었다. 하지만 친일 청산에 대한 민중의 요구는 높아져만 갔고, 1948년,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력한 자를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활동한 지 1년도 안되어,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일어나고, 친일파 처단에 대한 절호의 기회는 날아가고 만다.
▣ 친일파는 처단되지 않았다
경북 안동 출신의 애국지사 ‘장병하’, 그는 1943년 8월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해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1945년 3월 10일, 일본군 기념일에 맞춰 총궐기를 추진하다 사전에 발각되고 만다. 열여덟 살의 청년 장병하는 시위 주도 혐의로 모진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르다,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철창에서 나오자 자신의 앞에서 일본 경찰서장이 무릎을 꿇으며 사과했고 그제야 만세를 부르며 해방의 기쁨을 느꼈다는 장병하 애국지사.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사실을 접한다. 자신을 고문했던 경찰이 다시 경찰로 등용되었던 것이다.
▣ 영화감독 구자환, 단죄하지 못한 역사와 마주서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 전쟁 시기까지 자행됐던 민간인 학살에 관한 증언을 영상으로 기록해온 구자환 감독. 그는 민간인 학살 가해자에 관한 영화를 기획하던 중, 이모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의 구본환 감독을 만나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 김종원은 일본군 군인 출신으로 한국전쟁 전후 여수, 거제 등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장본인이자, 여순사건으로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구자환 감독은 독립을 위해 싸웠던 많은 이들이 민간인 학살로, 죽임을 당하고 친일파는 면죄부를 받았던 시대의 모순과 마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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