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의 압록 강변에 자리하여 중국의 단동과 마주하는 도시가 신의주이다. 예로부터 중국과의 국경에 자리하여 해동관문(海東關門)으로 변경 수비를 해오던 곳이다. 신의주는 ‘의주의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새롭게 탈바꿈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의 위치에서 하류를 향하여 약 20㎞의 거리로 이동했을 뿐 아니라, 경의선의 종점이며 도청소재지로 변모한 것이 새로운 의주이다.
의주의 옛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었으나 화의(和義), 보주(保州)에 눈길을 돌릴 수 있다. 후자는 고려 이후 한반도를 보호하는 전초지로서, 전자는 인접국과 평화 공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다.
정몽주가 시에서 ‘의주는 우리나라 문호로서 예전부터 중요한 관방일세. 장성은 어느 해에 쌓았는가, 꾸불꾸불한 언덕을 따랐네. 넓고 넓은 말갈의 물이 서쪽으로 흘러, 우리들의 강토를 경계 지었네. 내가 벌써 천 리를 떠나왔는데, 여기 와서 이렇게 머뭇거리네. 내일 아침 강 건너 떠나가면 요동 벌판에 하늘이 망망하리라’고 읊었다. 강희맹은 ‘하늘의 웅관(雄關)을 베푼 지 몇 해이드뇨. 땅은 문호(門戶)를 맞추는 것과 같으니 늘상 손님을 맞네. 용맹스런 백 대(百隊)는 구름같이 주둔한 군사요, 연기 나는 천 가(千家)엔 모여서 먹고 사는 백성이네. 강세는 서북쪽 기슭으로 사랑스레 들어왔고 산세는 바다 동쪽의 물가에 치우쳐 모였네’라고 읊었다. 이것은 국경을 지키는 관문으로 장성이 세워지고 통군정(統軍亭)의 지휘를 받는 주둔군, 백성이 모여 사는 취락 규모, 연안의 강물과 산세를 묘사한 글귀이다.
그러나 의주는 철도교통시대를 맞이하여, 경의선과 멀어지면서 도시 기능이 약화되고, 새롭게 출범한 신의주가 이에 대신했다. 신의주는 본래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탁류에 잠기는 갈대밭이며 늪지대였다. 그러나 육상에서 경의선의 종착역이 되고, 수상으로 천 톤급 선박이 왕래할 수 있는 개항장이 되면서, 새로운 면모의 국경 도시로 발전했다. 여기에다 1924년에 도청소재지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행정 기능을 더했고, 압록강의 뗏목에 의한 목재 집산지로 부상하면서,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겨울에는 1m의 두께로 압록강이 동결하는 데다, 퇴적물에 의해서 얕아지는 수심은 강운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의주는 예로부터 서울과 연결되는 서북대로의 종점이다. 서울의 서소문~서대문에 이르는 곳을 의주로(義州路)라 하는 것도, ‘의주로 통하는 시발점’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다 ‘경의선의 출발점’이기도 하므로, 의주로는 서울에 자리하면서도 의주~신의주와 육상교통을 이용한 연결의 의미를 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의주 [新義州] - 의로운 새 고을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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