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전투, 모내기 전투, 150일 전투. 북한에선 이 '전투'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중 동원 운동이 참 많습니다. 총칼이 오가는 진짜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터에 나섰다는 심정으로 목표를 달성하라는 의미가 담긴 건데요. 북한 당국은 산림 복구에도 '전투'를 명시한 바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초 제시한 '산림 복구 전투'가 올해로 10년을 맞았는데요. 몇 해 전만 해도 일부 성과가 나오기도 했죠? 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림 복구 정책에 집중도가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요. 북한 산림 복구 정책 10년을 ‘클로즈업 북한’에서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7월, 대규모 홍수 피해를 입은 평안북도의 수해복구 건설 현장.
수십 명의 건설 근로자들이 안전모만 쓴 채 맨손으로 작업을 이어갑니다.
나무를 이어 만든 임시 계단도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한눈에도 열악한 환경이지만 현장을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라고 독려했습니다.
[조선중앙TV : "모든 건설자들이 배가된 노력과 진정을 기울여 최단기간 내에 살림집 건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고 수해 지역 인민들이 행복의 보금자리를 펼 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위원장의 수해 현장 방문은 벌써 세 번째.
그만큼 피해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북한 수해의 근본적 원인은 산림 황폐화에 있다는 게 탈북민과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나무란 게 없으니까 비가 오면 그대로 돌사태, 일단 비가 오면 돌사태가 나요. 돌이 굴러오면서 집으로 들이치거든요. 다 엎어지고 그다음부터는 그길로 물이 내려오고요. 무서울 정도예요."]
[박소영/국립산림과학원 임업 연구사 :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산림 황폐화로 인한 토사 유출이겠죠. 산에 나무가 없으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산에 지력이 약해지고 산사태랑 같이 토사가 유출되는 확률이 훨씬 높아지거든요."]
실제 북한의 산들은 대부분 나무가 없는 민둥산입니다.
만성적인 에너지·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를 베 연료로 사용했거나 농지로 개간했기 때문인데요.
특히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경제난 시기에 이뤄진 산림 훼손은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박소영/국립산림과학원 임업 연구사 : "다락밭(계단밭) 건설은 정부 당국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확장이 됐고 또 하나 에너지난 때문에 땔감이 워낙 많이 벌채됐습니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서 겨울이 길고 춥지 않습니까. 그래서 땔감 사용이 워낙 많았어요. 서서히 황폐화가 된 게 아니라 단시간 황폐해졌기 때문에 그 여파가 매우 크다고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북한의 산림 복구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에야 본격적인 국가사업으로 추진됐습니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산림복원 10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중, 장기적 복원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북한기록영화 '인민을 위한 영도의 나날에4' : "나라의 산림 문제를 놓고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습니다. 우리 후대들에게 벌거숭이 산 흙산을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전후 복구 건설을 한 것처럼 산림 복구 전투를 벌입시다."]
'전투'라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주민 전체가 동원된 사업.
북한 당국은 2015년부터 매년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현대화된 양묘장을 건설해 산림조성에 박차를 가해왔습니다.
[신혜숙/여맹중앙위원회 부장 : "나무를 심는 사업은 정책을 심고 순결한 애국의 마음을 심으며 양심을 묻는 사업입니다."]
[곽철진/국토환경보호성 과장 :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사랑하는 조국 강산을 더욱 푸르게 하려는 애국의 마음을 안고 산림 조성과 보호 관리 사업에 온 나라가 떨쳐나서고 있습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일부 성과도 있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북한의 황폐화된 산림 면적은 22만 헥타르가량 감소했고, 북한도 2021년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에 약 78만 헥타르의 산림을 복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활발했던 북한 산림 복구 사업에 최근 몇 년간 제동이 걸린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경제난 해결의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대규모 건설 사업이 진행되면서 무분별한 벌목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박소영/국립산림과학원 임업 연구사 : "코로나19 이후에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 그 시기와 더불어서 '평양 대건설', '지방 대건설' 이런 건축 사업이 되게 많이 늘어나면서 대규모 벌목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거든요. 물론 북한도 벌목하면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는 건 맞는데 벌목지 자체가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관리 감독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것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진 확인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평양 같은 경우도 2020년까지는 꾸준히 조금씩 늘어났거든요. 근데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조금 줄었어요."]
북한 양강도 혜산 지역에서 검척 업무를 했던 탈북민은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전합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탄식이 나와요. 옛날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이제는 가면 '야... 이렇게' 하고 탄식이 나와요. 나무가 없어요. 나무를 계속 베는 것과 동시에 그만큼 심어야 하는데 제가 검척할 때 보면 한해에 나무를 베는 게 수도 없이 많아요. 끝이 없이 많이 베내어내는데 심는 건 진짜 백분의 일도 안되거든요."]
산간 지역 농민들에게는 농작물과 묘목을 함께 심는 임농 복합 경영을 권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묘목이 커지면서 농작물의 생육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큰 나무가 되기 전에 뽑아버린다는 겁니다.
[박현숙/2015년 탈북 : "방침은 그렇게 하라고 떨어져요. 그런데 그걸 다 실행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국가에서 월급도 안주지 배급도 안 주는데 하라면 하라는 대로 다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안 하는 거예요. 딱 보이는 식. 그저 도로 쪽에 몇 개 할 뿐이지 안 해요."]
북한의 지방 소도시나 농촌지역의 집들은 값비싼 석탄 대신 땔감용 장작을 난방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북한의 산림 복구를 지연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유엔의 '자발적 국가 검토 보고서' 역시 북한 도시 주민들은 석탄을, 지방 주민들은 나무 장작과 농업 부산물을 취사와 난방에 사용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최근 공급하고 있는 이른바 '농촌 문화 주택'의 주방에는 여전히 아궁이 시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북한 당국은 '지방발전 20승 10' 정책을 공식화하고 지방 공업 발전에 주력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필요한 연료와 원료까지 산림 자원에서 충당하려는 모습입니다.
[로혜성/평양북도 도양묘장 지배인 : "우리 도 양묘장에서는 지방발전 20x10 정책 집행, 관철에서 나서는 기름 나무림과 종이 원료림에 필요한 잣나무, 수유나무, 상원 포플러나무를 비롯해서."]
[김창혁/원산시산림경영소 부원 : "이 상원 포플러나무는 4~5년이면 얼마든지 종이 원료로 쓸 수 있습니다."]
장기화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봉쇄로 외부에서 물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일부라도 복원됐던 북한의 산림이 다시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박소영/국립산림과학원 임업 연구사 : "북한이 당면 과제가 많잖아요. 경제 발전도 해야 하고 도시 건설도 대규모로 하고 있어서 그런 거에 비춰보면 산림 황폐화 복구 사업은 뒤로 처지는 게 아닌지 정책적인 중요도에서 조금씩 밀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는 있습니다."]
북한 전체 산림의 약 30%는 여전히 황폐화된 상태.
북한의 자체 노력만으론 복원이 힘든 상황인 만큼 국제사회의 지원, 특히나 남과 북의 산림 협력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한반도가 백두대간으로 연결된 만큼 산림 훼손으로 발생하는 온도 상승, 탄소배출 등의 기후 문제는 북한 지역뿐 아니라 남한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지난 2018년 정상회담에서도 남북 산림 협력에 합의한 바 있는데요.
당시 북한 당국도 협력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김성준/당시 북한 국토환경보호성 산림총국 부총국장 : "경제협력 분과회담 중에는 우리가 처음입니다. 우리가 선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큽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산림 협력도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 필요성은 여전히 절실하다는 평가입니다.
[박소영/국립산림과학원 임업 연구사 : "남북이 휴전선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반도 산림 자체는 나뉘어 있진 않거든요. 남북은 태백산맥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산림 환경으로 서로서로 충분히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 1970년부터 우리도 한번 경험해 봤고 우린 극복했고 기술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전수해 줘서 나중에 장기적으로 보자면 한반도에 좋은 산림 환경은 후대에 물려주는 사업이 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산림 복구 전투 10년째를 맞은 북한.
남과 북이 푸르른 백두대간을 나란히 마주하기에는 먼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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