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 강제동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정부의 외면 속에 피해자들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패소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아픈 역사의 증인이 되어 변화를 이끈 26년 법정 투쟁의 과정, 신호 기자가 조명했습니다.
[기자]
1992년 광주 대동고등학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첫 재판, '천인 소송'에 나섰습니다.
결혼 2년 만에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이 전사통지서로 돌아온 이금주 할머니가 이끌었습니다.
[이금주 / 대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 회장 : 이 모든 아픔이 누구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며 왜 우리는 그 상처를 치유도 받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까.]
일본의 변호사들과 시민사회가 이길 수 없어도 싸워야 했던 재판을 도왔습니다.
[이와하시 하루미 / 일본 고려사 박물관 이사 :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어도 우리는 소리를 울려야 일본 국민도 알게 되고 한국 사람도 호응하실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먼저 재판 설명회를 했습니다.]
소송의 과정을 매일 적은 일기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손으로 쓴 소장은 강제동원의 증거이자 재판 전 과정의 기록입니다.
정부가 진상조사에 나서기 10여 년 전 일입니다.
[정혜경 /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 호적부터 시작해서 그분들의 명함, 사진을 다 해서 하나하나를 다 만들어 놓고 그걸 가지고 소장을 쓴 거예요. 그때 일본어로. 그때가 70대에 시작했잖아요. 이 분이.]
미쓰비시 소송 지원 모임의 지난달 522번째 집회.
매월 두 번째 금요일에 도쿄 미쓰비시 중공업 본사 앞에서 전범 기업의 책임을 묻습니다.
[이치바 준코 / 한국원폭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임 : 미쓰비시 중공업은 매년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에게 일본 회사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지를 제대로 사내 교육하고 있습니까?]
와카타니 씨는 전범 기업 후지코시의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기록하라고 촉구했습니다.
1944년 인천에서 교사였던 어머니가 제자 7명을 후지코시에 보냈습니다.
[와카타니 마사키 /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사진 기증자 : 전쟁 중 혼란기에 작은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패전 중에 돌려 보냈다는 사실을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고.]
1992년 광주 천인소송에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26년 법정 투쟁이 이어진 힘은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의 양심들이 함께 쌓아 올린 기록이었습니다.
일본의 변화를 견인할 수 있는 밑천이기도 합니다.
[김준형 / 전 국립외교원장 : 정부는 이 가해자와 함께 이것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걸 밝혀내서 사실 그것을 바로 잡는데 앞장서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써가고 있는 역사의 이야기, (탐사보고서 기록) 강제동원-피해자 없는 시대 편은 오늘과 내일 밤 11시에 방송됩니다.
YTN 신호입니다.
YTN 신호 (sino@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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