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특집] DNA, 그리고 기다림
지난해 여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입양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카라 보스.
DNA를 통해 찾은 친아버지 측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자
친부를 상대로 친생자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DNA 일치 여부를 근거로
입양인 카라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인터뷰: 카라 보스/ 미국 한인 입양인]
"오늘은 입양인 모두에게 중대한 날로 기록될 거예요. 마침내 우리의 투쟁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그동안 입양인들은 가족과 연락이 닿기까지 아무런 힘도 권한도 없었습니다."
입양인들 사이에서 친가족 찾기는
'기적'이라 불립니다.
그런 가족과 처음부터
법정 싸움을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 얼굴이 궁금했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찾고 싶었습니다.
수수께끼 같던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마침내 친부와 재회한 순간….
[인터뷰: 카라 보스/ 미국 한인 입양인]
"정식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는데 모자에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경호원들과 함께 오셨어요. 알아볼 수도 없었고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수 없었어요. 방어적이셨고 저에게 적대적이었거든요. "내가 왜 여기에 온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라고 하셨죠."
아버지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린 상봉.
그 후 5개월 만인 지난 11월, 카라 씨는 법적 절차 끝에 친부의 딸로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엄마 찾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인터뷰: 카라 보스/ 미국 한인 입양인]
"제 바람은 친모나 모계 가족분들이 기사나 뉴스를 보고 용기 있게 나와주시는 거예요. 이 소송은 단지 버림받은 소녀가 부모를 찾아, 그리고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이제는 어른이 된 소녀에게 그 정도 권리는 있지 않나요."
카라 씨가 묻습니다.
이 기다림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이대로, 모든 걸 묻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해설]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은 미국 미네소타.
이곳에도 가족을 찾는 입양인이 있습니다.
카오미 게츠 씨는
PBS 미네소타 지국의 베테랑 기잡니다.
[현장녹취: 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오늘은 국립 이글센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미네소타주에서 꽤 큰 명소인데요. 어떻게 명소가 됐는지,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해요."
카오미 씨는 라디오 리포터로
방송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숨은 사연을 발굴해낼 때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꼬박 반나절 동안 고생한 촬영본은
이곳에서 제작물로 탄생합니다.
코로나19로 현장 인력이 대폭 축소됐지만,
카오미 씨는 방송국에 없어선 안 될
주요 인력이죠.
입양인이라는 배경은 그녀만의 강점이 됐습니다.
[인터뷰: 브랜든 히내헨/ PBS 프로듀서]
"우리는 기자마다 각자 경험을 살리길 바랍니다. 카오미 기자는 작은 도시에서 자라오면서 유일한 동양인으로서 자란 경험을 일에도 녹이고 있어요. 그건 굉장히 가치 있는 배경이죠."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제 목소리는 오랜 시간 묻혔어요. 특히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이후에 이 비밀을 오랫동안 묻어둬야 했죠. 기자가 된 데에는 과거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목소리를 가지고 싶었거든요."
퇴근 뒤, 입양인 존 씨가 카오미 씨 팟캐스트에
출연하기 위해 들렀습니다.
한인 입양인들의 사연을 담은 이 팟캐스트는
누적 다운로드 8만 건을 넘을 만큼
청취자가 꽤 많습니다.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제 팟캐스트에는 입양인들만 출연해요. 입양인은 입양인끼리 더 안전하다고 느끼거든요. 이 시간은 저를 치유하기도 하죠. 입양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 사연은 어땠는지, 당시 감정은 어땠는지 돌아보게 하거든요."
[인터뷰: 존 지/ 미국 한인 입양인]
"저는 가족 중에 첫 번째로 입양됐어요. 자녀 6명 중에 나이는 제일 어렸죠…."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입양서류에는 제가 생후 11일 정도에 평택 군청(1970년 당시)에서 발견됐다고 나와요. 11살이던 해에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어요. 당시에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이 사람은 내 아버지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잖아요. 성적 학대는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10대 땐 화장을 하기 싫어졌고, 남자가 저를 좋아하지 않길 바랐거든요. 그런 관심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 과거를 외면했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기에도 벅찬 시간이었죠.
그녀가 다시 과거와 마주하기로 마음먹은 건
입양인 친구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뿌리 찾기 여정을 시작하는 입양인들을
'안개를 걷어내고 나온다'고 표현합니다.
너무도 다른 생김새에 한 번쯤 겪는 정체성 혼란,
한국인 뿌리를 마주할 때야 비로소 눈앞에 드리운 뿌연 장막이 걷힌다고 느끼기 때문인데요.
가족을 찾으면 세상이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고,
입양인들은 믿습니다.
[인터뷰: 다이애나 알브레츠/ 미국 한인 입양인]
"친자매나 친부모 사진을 볼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보면서 '그 많은 세월 동안 다른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라고 상상해볼 수 있잖아요."
[인터뷰: 웨인 갱가스/ 미국 한인 입양인]
"내 친가족이 누군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죽기 전에 친모 사진 한 장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전부예요…."
카오미 씨도 가족이 보고 싶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평택을 찾아 전단지를 붙이고
언론에 도움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입양서류 속 정보가 부족해
별다른 소득이 없었죠.
카오미 씨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가족과 연결해주는 DNA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등록한 DNA로
먼 친척을 찾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캐나다에 사는 친척과 DNA가 일치했어요. 저와는 고조부가 같은 사이였는데, 그분이 한국에 있는 할머니에게 연락을 해줬어요. 그런데 할머니의 가족들이 가족 찾기를 도와줄 수 없다고 했고, 할머니를 통해 그분에게도 더는 도움을 주지 말라고 했대요. 거부감을 표현하니 그 이후로 문이 닫히게 됐죠. 그분들은 가족 찾기를 더는 진행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닫혀버린 문 앞에
두텁게 쌓여만 가는 장벽.
힘들게 안개를 걷어내고 나왔지만,
마주한 세상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합니다.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1970년대 입양 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한국인들은 당시 한국이 빈곤했다고 얘기해요. '가난이 내가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고 입양 가야만 하는 명분이 되는구나.' 이제 한국은 훨씬 부유한 나라가 됐어요. 이 나라가 못 살던 나라였나 떠올리기 힘들 정도죠. 사람들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기적이라고 말해요. 한국이 빠르게 발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당시 이 나라를 떠나야 했던 수많은 입양아동을 잊어버리고 싶었던 건 아닌가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으로 입양됐다고 하면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
더 좋은 기회를 얻었을 거라 말합니다.
경제 성장이 중요했던 1970년대 한국은,
그만큼 가난을 죄스러운 일이라 여겼습니다.
[인터뷰:카오미 게츠/ 미국 한인 입양인]
"저는 기자로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집과 대학 졸업장이 있어요. 많은 사람이 볼 땐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데 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정체성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 이걸 알고 싶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예요. DNA 검사를 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모든 방법을 다해서 가족을 찾을 거예요. 가족 찾기는 인권의 문제고, 제 인생에 마침표를 꼭 찍고 싶습니다."
[해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입양아동이
보내진 나라 프랑스.
남부지역의 대표 도시 몽펠리에가
청사초롱으로 물들어갑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처음으로
한글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터뷰: 세드릭 /프랑스 몽펠리에]
"이렇게 해놓으니까 정말 예뻐요. 눈에 확 띄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죠. 사람들이 이런 게 뭐냐고 물어보면 설명을 해주면서 우리의 한국 사랑을 프랑스에 전하는 거죠."
코로나19로 행사 대부분이 취소됐지만,
시 교육청에서 한글날을 공지할 만큼 몽펠리에시에서 한글의 입지는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이 도시의 한국 사랑 중심에는
입양인 소피미애 씨가 있습니다.
[인터뷰: 소피미애 필로탕/ 프랑스 한인 입양인]
"몽펠리에에 한글 배우는 학생들이 많이 있거든요. 한글과 한국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미애 씨 본업은 한글학교 교사.
그녀의 수업은 한인 입양인과 그 가족들에게
인기 만점입니다.
미애 씨 남편과 아들도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덕분에 몽펠리에 한글학교는
입양인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은 편입니다.
[인터뷰: 산드린 코스트/ 프랑스 한인 입양인]
"같은 입양인으로서 한국말을 잘하는 선생님을 보면 동기부여가 돼요. 나이가 많아서 힘들긴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어릴 때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온 입양인들은
우리말과 문화가 낯설 수밖에 없는데요.
열 살 무렵 프랑스로 입양된 미애 씨는 가족과 한국에서 함께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인터뷰: 소피미애 필로탕/ 프랑스 한인 입양인]
"엄마랑 같이 살았다가 엄마가 집을 나가셨어요. 아빠는 술을 많이 드신 기억이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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