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은 러시아에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위한 목적으로 러시아 역대 과학자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러시아 과학의 날입니다. 이번 방송에서는 상식의 지평을 넓혀보고 러시아의 기초과학 잠재력을 알수 있는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과학수준은 대단합니다. 물리학, 화학, 의학, 생물학등 전방위에 걸쳐 인류역사에 중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 많습니다.
첫 번째 소개해드릴 사례는 화학 원소주기율표입니다. 과학자들이 물질을 탐구하고 새로운 원소의 존재를 예측하는데 사용되는 기본 도구입니다. 이는 1869년 과학자 드리트리 멘젤례예프가 만들었습니다. 인류는 고대부터 몇가지 화학원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17세기에 독일의 연금술사 헨니히 브란트는 새로운 원소 인을 발견하고 과학실험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이로부터 100년뒤에는 프랑스 화학자 앙투안 라브와지에가 최초의 현대 화학교과서로 여겨지는 화학기초논문을 저술했습니다. 이런 화학의 기초를 완성시킨게 바로 드미트리 멘젤레예프입니다. 그가 화학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나이는 불과 35세때였습니다. 그는 늘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궁금해했고 빨리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았습니다. 멘젤례예프는 화학원소의 원리를 궁리하면서 잠못이루는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사무실 소파에 누워 잠이들었는데 꿈속에서 화학원소 주기율표가 나타났다고합니다.
그는 원소를 원자량으로 배열하고 특성의 주기성을 기록했습니다. 19세기 중반만 해도 63개의 원소만 알려져 있았지만 지금은 118개의 원소가 주기율표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멘젤레예프가 주기율표를 완성한 1869년은 조선으로 치자면 철종말년의 기사년으로 가뭄이 극심해 대기근이 시작된 해였습니다. 이 때부터 3년동안 함경도 주민 26000명을 포함해 6만명의 백성들이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지금 연변의 조선족들이 넘어간게 일본 식민지시대가 아니라 이미 고종즉위 1년전부터였습니다. 이 6만명이라는 숫자는 대단한 것입니다. 1871년 오늘날의 서울인 한성부의 인구가 20만 7천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처럼 역사는 동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대조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멘젤레예프의 주기율표에 가장 최근에 추가된 것 역시러시아 과학자의 공헌으로 발견된 원소입니다. 오가네손이란 것인데 몇가지 초중원소를 발견한 러시아의 핵과학자 유리 오가녜시안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습니다.
다음으로는 전쟁터에서 야전 수술을 함으로서 의학에 막대한 공헌을 한 니콜라이 피로고프란 인물이 있습니다.1850년대 크림전쟁기간동안 세바스토폴의 야전병원 의사로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한 최초의 외과의사였습니다, 전투중 부상자들을 위한 치료모델을 만들어냈고 정형외과용 모형도 최초로 사용한 의사중 한명입니다. 피로고프는 러시아 야전의학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리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모방해 러시아식의 여성간호사 그룹을 훈련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유명한 프랑스 외과의사 도미니크 장 라리를 만나 환자분류시스템을 러시아 육군 의무대에 도입했습니다.
다음으로는 파블로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반 파블로프라는 이름은 익숙치 않아도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개에게 먹이를 주면서 메트르놈으로 자극을 주니까 나중에는 메트로놈 소리만 내도 개가 침을 흘린다는 실험으로 유명합니다. 이는 행동치료와 중독을 조사하고 치료하는데 사용됩니다. 1904년 파블로프는 소화생리학에 관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러시아인이 됩니다.
이번에는 마야 스크립트를 해독한 유리 크노로조프입니다. 크노로조프는 모스크바 주립대에서 이집트학을 전공했지만 마야 문화에 매료됐습니다. 그가 걸출한 것은 마야스크립트를 이해하는데 이집트 상형문자의 원리를 이용했다는 점입니다. 크노로조프는 마야문화의 원산지 중미를 가본적도 없지만 불과 30세때인 1952년에 마야스크립트 해독법을 발표했습니다. 상형문자가 소리를 낸다는 점에 착안해 540개의 기호로 구성된 카탈로그를 작성하고 이를 이용해 마야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공식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됐고 과학계에서 수십년동안 토론을 이끌어냈습니다. 크노로조프가 이끄는 소련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이스터섬의 문자와 인더스 문자같은 문명의 미스테리를 해독하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멕시코의 마야 문명이 존재했던 메리다와 유카탄반도 도시에는 크노로조프 기념비도 있습니다. 그는 고양이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양이 아샤도 공동 저자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다음으로는 레이저 연구입니다. 레이저가 없는 현대문명은 상상하기도 힘들정도로 의료, 산업, 전자등 모든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레이저란 말은 유도방출에 의한 광증폭의 약자입니다. 레이저 이전의 개념은 유도방출에 의한 마이크로웨이브 증폭이란 메이저Maser입니다. 이 연구는 소련과 미국에서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소련에서는 1952년 물리학자 니콜라이 바소프와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가 메이저 연산의 이론적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물리학자 조셉 웨버가 증폭기 제조원리를 설명했고 찰스 타운스란 물리학자가 이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1964년에 바소프와 프로호로브, 그리고 미국의 타운스는 메이저, 레이저 원리에 기반한 발진기와 증폭기로 이뤄진 전자분야의 기초작업으로 노벨상을 공동수상했습니다.
다음으로는 홀로그램입니다. 홀로그램은 1947년 헝가리계 영국 물리학자 데니스 가보르가 발명했습니다. 전자현미경을 개선하려다 발명한 건데 돌파구는 1960년대 소련의 물리학자 유리 데니슈크가 열었습니다. 그는 고품질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해 데니슉 홀로그래프라는 단일빔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3개의 레이저로 풀 컬러 홀로그램을 얻었습니다. 그는 흥미롭게도 전체 가시 색상 스펙트럼을 기록하는 전용기술인 리프만 컬러 사진 기술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선형 프로그래밍입니다. 소련의 경제학자 레오니드 칸토로비치가 1930년대 산업 비즈니스 계획에 사용되는 기법으로 고안한 것입니다. 그는 1975년 자원의 최적할당 이론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만든 선형 프로그래밍 이론은 미시경제학에서 널리 사용되며 계획, 생산, 운송과정에 적용해 생산비용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유인 우주비행의 아버지로 불리는 콘스탄찐 춀코프스키입니다. 소련과 러시아의 우주프로그램의 기원이 바로 춀코프스키입니다. 그는 10살 때 청력을 거의 잃고 독학을 한 과학자입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앞섰습니다. 1895년에 인공위성의 출현을 예견했습니다. 1895년은 조선에서 을미년입니다. 민비가 경복궁에서 일본 낭인에 의해 살해당한 해입니다.
이 때 춀코프스키는 세상사람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인공위성을 머릿속에 집어넣었습니다. 1903년에는 춀코프스키 로켓 방정식으로 알려진 수학방정식도 발표했습니다. 이 방정식은 항공우주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는 우주 로켓 여행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그는 또 미래의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을 극복하는 방법을 구상했으며 비행경로와 착륙방법도 설명했습니다. 수십년후 그의 이론은 모두 현실이 됐습니다.
춀코프스키는 나중에 부란 우주선과 로켓엔진을 설계한 발렌찐 글루쉬코가 학생이었을 때 멘토가 돼 줬습니다. 글루쉬코는 춀코프스키에세 편지를 써서 우주비행에 관한 자신의 꿈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춀코프스키 이후 그의 우주위업은 세르게이 코롤례프가 계승했습니다. 그는 소련우주프로그램을 이끌면서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알렉세이 레오노프의 우주유영, 최초의 여성우주인 발렌찌나 쩨레쉬코바의 임무를 지휘했습니다.
이 쩨레쉬코바라는 인물은 여성우주인이란 것과 그의 딸로 아주 유명합니다. 그녀의 갓날 딸을 모델로 한게 러시아의 대표적인 쵸콜렛 알룐카입니다.과학기술에 대한 러시아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월 8일은 젠 나우키, 과학의 날로 지정하고 이공계 인재를 치하합니다. 러시아는 이렇듯 역사가 유구한 기초과학 강국입니다. 무슨 까보러니 뻥스펙이니 하는 저속한 말로 얕잡아 볼 나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배울게 무궁무진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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